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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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상

복지사상

빚진 자 의식

한경직은 평생 동안 자신이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다.

먼저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라는 의식이 있었다.
또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소를 팔아 학교에 보내 주신 아버지, 사랑과 열정으로 자신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 유학길에 오를 여비로 100원을 선뜻 내어 준 윤치호, 폐결핵에 걸려 알버커키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이름 없는 나라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을 사랑으로 간호해 준 이들에게 그는 사랑의 빚을 졌다는 의식이 있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의식

한경직에게는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였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서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힘썼다.
특히 그에게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의식이 있었다.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는 위기의 시대마다 위험에 빠진 약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속적인 사업추진 의식

한경직은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여러 기관을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그의 도움이 단순히 감정적이고 일회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후원회를 조직해서 그 기관이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는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한경직이 설립하거나 그가 주도적으로 설립에 참여한 기관은 오늘날도 계속 발전하여 사회에 큰 유익을 끼치고 있다.
그가 세운 영락보린원, 영락모자원, 영락경로원, 영락애니아의 집, 월드비전 등이 그 구체적인 증거이다.

이웃사랑의 연표

이웃사랑의 연표

복지활동

복지활동

신의주 목회시절부터 시작한 복지사역

한경직은 신의주 제2교회를 이끌던 시절에 ‘복순’이와의 만남을 통해 개인적 차원의 사회봉사를 교회적 차원으로 발전시켜 1939년에 고아원인 보린원을 세웠다.

그는 신의주 일대를 비롯해 멀리 상해까지 건너가 다양한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해 보린원을 확장했고 보다 많은 고아들을 돌보았다.

또한 일제에 의해 목회를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직접 보린원에 들어가 분뇨통을 매어 나르며 고아들의 아버지로 그들을 섬겼다.
또한 1941년에는 남신의주에 노인관을 증축하기도 했다.

이러한 복지사역은 한경직이 평생 동안 다양한 복지사역을 감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공산체제를 피해 월남한 한경직은 영락교회를 설립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 사역을 펼쳐갔다.

1947년에는 서울에 보린원을 재건했고 피난민을 위해 천막촌을 만들어 일정기간 그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게 했으며, 피난민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 등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구호활동

한경직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전쟁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경직은 보린원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전쟁기의 상황으로 볼 때 단순히 고아들의 보호와 양육만으로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전쟁미망인과 그 자녀들을 위하여 한국 최초로 다비다모자원을 세웠다.
또한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을 위한 시설인 영락경로원을 세웠다.

그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해 전세가 다시 악화되자 미 공군에게 요청하여 서울 보린원에 내려와 있던 60여 명의 어린 고아들을 미군 수송기에 태워 제주도로 피난시켜 그들의 생명을 건져냈다.

한국전쟁 당시 50여 개의 외국민간원조기관 (Korea Association of Voluntary Agencies)들이 한국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외원기관들은 전재민 응급구호사업을 펼치고 고아원 운영, 해외 입양, 전쟁미망인에 대한 원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교회는 외원기관을 통해 얻은 구호품(식량과 의료)을 나눠 주는 통로가 되었고, 그 당시 미국유학을 통해 영어구사가 자유로웠던 한경직은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서 한국 측 창구 역할을 감당했다.

영락교회와 함께한 다양한 사회복지사역 - 영락사회복지재단

한경직은 영락교회를 주축으로 해서 여러 가지 사회봉사 사역을 펼쳐갔다.

1947년에는 서울에 보린원을 재건했고 피난민을 위하여 천막촌을 만들어 일정기간 그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게 했으며, 피난민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그 당시 교회에서 복지사업을 실시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한경직과 영락교회가 펼친 복지사업의 특징은 1957년에 이미 서울시로부터 ‘재단법인 영락원’(현재의 영락사회복지재단)설립 인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영락경로원은 하남으로 이전해 노인전문시설로 발전했고, 영락모자원과 영락보린원도 시설을 확장했다.
1981년에는 관악구청의 제의를 받아 철거민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합실어린이집을, 1990년에는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 아이들을 위한 영락어린이집을 열었다.
1994년에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영락애니아의 집을 열었다.
현재 영락경로원 안에는 요양원과 가정봉사원파견센터, 노인주간보호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1957년 설립한 재단법인 ‘영락원’은 1990년에 ‘영락사회복지재단’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발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영락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업은 아동복지사업(영락보린원, 영락그룹홈, 영락지역아동복지센터), 노인복지사업(영락경로원, 영락요양원, 영락가정봉사원파견센터, 영락소규모요양원, 은빛사랑채 노인주간보호센터) 모자복지사업(영락모자원), 영유아보육사업(합실어린이집, 영락어린이집), 장애인복지사업(영락애니아의집, 영락주간보호센터), 장학사업(금성장학회)이다.
총 13개 시설로 교회가 설립한 복지재단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이를 통해 가난하고 낮은 자들의 좋은 이웃이 되고자 했던 한경직의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월드비전

한경직은 밥 피어스와 함께 한국전쟁 중에 거리에서 죽어 가는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전문 구호기관인 선명회(현 월드비전)를 설립했다.

한경직의 증언에 의하면 밥 피어스는 주로 홍보와 모금을 맡았고 한경직은 실제적인 구제와 구호활동을 담당해 함께 일했다.
초기 선명회는 목사수양회를 통해 세계적으로 전도와 교회 부흥에 힘썼고, 피난민과 고아들, 전쟁미망인과 무의탁 노인들을 돕는 구호사업, 병자들을 돕는 의료사업을 펼쳤다.

한경직은 1953년에 한국에 사무실이 마련되고 조직과 법인이 체계적으로 설립된 후 초대 이사장에 취임해 1986년까지 일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예 이사장으로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월드비전은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의 어린이를 돕기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동지역을 넓혀 갔다.
현재 월드비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책임감 있게, 가장 큰 규모로 개발, 구호 활동을 하는 기독교 국제구호개발기구로 성장했다.

월드비전http://www.worldvision.or.kr/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1980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9년 연속 풍작으로 1,100만 섬의 쌀이 남아돌기 시작했고 이를 유지·관리하는 데만 정부 재정 4,000억 원이 들었다.

그리하여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쌀 막걸리, 쌀 소주, 쌀 술 등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었다.
이에 반해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매일 4만 명의 아동들이 굶주림으로 죽어 간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당시는 남북이 전혀 교류하지 않았고,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한경직은 한 형제이자 같은 동포이면서 굶어 죽어 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살리자는 뜻에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는 비록 북한 공산당의 심한 박해를 경험했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화해를 이루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은 50여 개 기관이 연합한 범사회적인 연합운동이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천주교 등도 크게 호응했고 해외 교민들, 외국 기업까지 동참했다.

1990년 7월에 남포항을 통해 쌀 1만 가마가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됨으로써 분단 이후 첫 남북 민간 교역의 문을 열었고, 이는 굳게 닫힌 북한의 빗장을 여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2009년 보고자료에 의하면 총 88억 8천만 윈의 모금을 거두어 북한에 11억, 몽골을 비롯한 20여 개 나라에 40억, 그리고 국내에 38억 상당의 사랑의 쌀을 나누어 왔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은 국민의식을 계몽하고 국위를 선양하며 사랑의 실천, 믿음의 봉사로 국민적 화합에 기여하는 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경직이 설립한 복지기관들

한경직이 설립한 복지기관들

영락애니아의집
영락보린원
영락어린이집
영락노인복지센터
영락사회복지재단
합실어린이집
영락모자원
영락경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