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test

전도사상

전도사상

유일한 소망이요 살 길, 전도

한경직은 개인과 민족이 살 길은 오직 기독교 복음에 있다고 보았다.

영혼의 구원도 복음을 믿는 데 있고, 썩어져 가는 사회를 구할 길도 오직 복음에 있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전도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요 살 길입니다”라고 강조하였다.
1945년 12월, 27명의 성도들과 함께 시작한 영락교회는 피난민교회였지만 1년도 안 되어 두 군데에 개척교회를 세웠다.
이는 개척교회가 동시에 개척교회를 세운 최초의 일로 한국교회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다.
그 후 한경직은 영락교회를 목회한 27년 동안 군인교회를 제외하고도 총 75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는 1년에 2개의 비율로 교회를 개척했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그가 교회개척을 중요한 사업으로 추진했다는 증거이며 지금까지도 영락교회는 전도를 많이 하는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한 전도 - 다양한 분야별 전문인 전도

한경직에게 있어서 전도는 최대 목표요 사업이었다.
그는 평생 동안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통해 전도를 실천했다.

노방전도, 축호전도, 빈민가전도, 사창가전도, 문서전도, 방송전도, 농어촌전도, 학원선교, 군선교, 병원선교, 구치소선교, 산업선교, 실업인선교, 북한선교, 해외선교, 전국 복음화 운동, 아세아 복음화 운동, 세계 복음화운동 등과 같은 전도 사업은 그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거나 그가 처음으로 주도하면서 추진된 사업들이었다.

개인 구원, 민족 구원, 전 세계 구원을 위한 전도

한경직은 민족이 구원받아 국가의 운명이 변화되는 것을 전도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한경직은 전도의 목표를 단순히 개인을 전도해서 그의 영혼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으로 한정시키지 않았다.
그는 한 개인의 영혼 구원을 민족 구원으로 확대되는 발판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민족이 구원받아 국가의 운명이 변화되는 것을 전도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또한 한경직에게 전도는 단순히 영락교회라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를 살리는 방편이었다.
그의 전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단순히 국내에 머물지 않았고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넓고 크게 퍼져갔다.

전도활동

전도활동

민족복음화 운동

한경직은 1964년부터 민족복음화운동을 시작했다.
그해 12월 3일에 전국복음화운동기구가 결성되었을 때 로마천주교회와 성공회도 함께 참가했다.
그는 1965년을 ‘전국복음화운동의 해’로 정하고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를 표어로 정했다.
그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표어로 수정되었다.

이 운동의 목표는 당시 한국에서 예수를 믿는 150만 신도 하나하나가 온전히 변해서 새사람이 되고, 빛이 되고, 복음을 전파해서 이 민족과 나라를 영적으로 구원하고 다른 모든 방면으로 구원하자는 것이었다.
한경직은 민족복음화를 이루는 구체적인 전도사업으로 노방전도, 축호전도, 빈민가전도, 사창가전도, 문서전도, 방송전도, 농어촌전도, 학원선교, 군선교, 병원선교, 구치소선교, 산업선교, 실업인선교 등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갔다.
이 가운데 산업선교, 방송선교, 군선교 등은 한경직에 의해 가장 처음 시작된 전도사업이다.
또한 한경직은 군인교회를 가장 많이 세웠고, 구치소선교도 가장 활발하게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새 교회에 대한 비전, 새 나라에 대한 비전 가운데 이 운동을 일으킨 결과 오늘날 세계인들이 놀라고 부러워하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이 되었다.

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사업

한경직은 20개 교단과 26개 선교기관이 연합한 한국기독교100 주년기념사업협의회의 총재로 추대되었다.
그는 한국에 최초로 선교사가 상륙했던 인천 제물포항에 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탑을 건립했다.
또한 선교사 헤론을 비롯하여 490여 기(基)의 선교사 무덤이 있는 양화진 묘역을 성역화하고 외국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한국기독교선교 센터(유니온교회)를 건립하였다.
이것은 복음을 전해 받은 이들이 복음을 전해 준 이들을 위해 세운 최초의 교회이다.

이 외에도 용인에 순교자기념관을 세워 한국 기독교 순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으며, 맹인들을 위한 개안수술 전문병원인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1984년을 ‘선교의 해’로 정하고 지역별 기념대회, 강연회, 기독교 유적지 답사 등을 개최하였고, 1985년은 ‘기념대회의 해’로 정하여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 연인원 450만 명이 모이는 매머드 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대회에는 해외 귀빈 초청 만찬회, 음악제, 기념강연회, 여성교육대회, 신학세미나, 연극제, 합창제 등을 전개했다

북한선교

한경직은 아직 해방되지 못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 진리와 자유의 씨를 계속해서 뿌리는 것이 북한선교의 근본의도라고 밝혔고, 방송선교와 문서선교, 38선에 십자가 세우기,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등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템플턴상 수상금 전액을 북한선교를 위해 기증함으로써 북한선교의 간절한 염원을 표현했다.

그의 북한선교 활동은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로, 북한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것, 둘째로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나누는 것, 셋째로 전 민족복음화에 참여해 평화적으로 남북한 민주통일이 이루어지는 것, 넷째로 북한교회를 재건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