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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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턴상 이란

템플턴상(Templeton Prize for Progress In Religion)이란?

노벨상에 종교 부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존 템플턴이 재단을 설립하고 기금 3만
4000파운드를 상금으로 내놓았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은 특별히 인류를 위해 영성에 공헌하거나
개척자적인 일을 한 사람을 발굴해서 세상에 알리고 그 가치를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세계적인 종교인에게 수여하는 의미 있는 상이다.
해마다 세계적으로 종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템플턴상 시상식 행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해당 년도 수상자의 연설을 듣는 공식
행사는 매년 장소를 바꾸어 가며 거행되고, 수상패와 수상금 수여식은 항상 영국 왕실인
버킹검 궁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역대수상자

이 상이 처음으로 제정된 1973년에 인도 캘커타에서 빈민을 위해 일생 동안 헌신한 테레사 수녀가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그 후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를 이룬 로저 수사, 인도의 전 대통령이었던 힌두교인 크리슈난, 일본의 불교 지도자 니코니와노, 소련의 망명작가 솔제니친,
한경직의 절친한 친구이자 세계적인 복음전도자였던 미국의 빌리 그래함, 파키스탄의 이슬람교 지도자 아니물라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제1회 1973년 :

제2회 1974년 :

제3회 1975년 :

제4회 1976년 :

제5회 1977년 :

제6회 1978년 :

제7회 1979년 :

제8회 1980년 :

제9회 1981년 :

제10회 1982년 :

제11회 1983년 :

제12회 1984년 :

제13회 1985년 :

제14회 1986년 :

제15회 1987년 :

제16회 1988년 :

제17회 1989년 :

제18회 1990년 :

제19회 1991년 :

제20회 1992년 :

제21회 1993년 :

제22회 1994년 :

제23회 1995년 :

제24회 1996년 :

제25회 1997년 :

제26회 1998년 :

제27회 1999년 :

제28회 2000년 :

제29회 2001년 :

제30회 2002년 :

제31회 2003년 :

제32회 2004년 :

제33회 2005년 :

제34회 2006년 :

제35회 2007년 :

제36회 2008년 :

제37회 2009년 :

제38회 2010년 :

제39회 2011년 :

제40회 2012년 :

마더 테레사 수녀

로저 수사

사르베팔리 라다 크리슈난 대통령

레오 조셉 쉬에난스 브뤼셀 대주교

치아라 루비치

토마스 토렌스 스코틀랜드 교회 지도자

니코 니와노 불교지도자

랄프 웬델 버후

시슬리 손더스

빌리 그레이엄 목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작가

마이클 보르도 목사

앨리스터 하디

제임스 I. 맥코드

바바 암테, 찰스 버치

이나물라 칸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체거

임마누엘 야코보비츠

임마누엘 야코보비츠

한경직 목사

찰스 콜슨 전도자

마이클 노박

폴 데이비스

빌 브라이트 C.C.C. 국제 총재

Pandurang Shastri Athavale

지그문트 스턴버그

이안 바버

프리먼 다이슨

아서 피콕

존 폴킹혼

홈즈 롤스턴 3세 교수

조지 엘리스 박사

찰스 타운스 박사

존 D. 배로 교수

찰스 테일러 교수

마이클 헬러 신부

베르나르 데스파냐 교수

프란시스코 아얄라 교수

마틴 리스

달라이 라마

한경직의 템플턴상 수상

1991년 12월 22일 템플턴상 심사위원회는 9명의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한경직을 1992년도 템플턴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해왔다.
템플턴상 심사위원회는 1992년 3월 11일 오전 11시 뉴욕의
유엔 교회 센터(Church Center for the United Nations)에서
한경직에게 이 상을 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한경직 목사는 서울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인 영락교회를 세웠으며, 피난민과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한국 기독교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다. 한 목사는
20세기가 낳은 한국의 가장 뛰어난 목사이다. 그는 한국에 많은 교회가 서도록
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미주 지역에 해외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선교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여러 교육 기관과 사회봉사 기관을
설립하여 교육자로서 또 사회 봉사자로서 사회 복지에 기여하였으며 나라가
위험할 때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하였다.”

한경직은 1992년 4월 29일 독일 베를린 샤우스필하우스에서 수상연설을 하고
5월 7일 영국 왕실인 버킹검 궁에서 수상패와 102만 불(한국돈으로 약
8억 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때 그의 나이 90세였고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템플턴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그는 북한 선교에 쓰여지도록 상금 전액을 영락교회에 기탁했다.

관련자료

템플턴상 수상 연설문

장소: 베를린 샤우스필하우스
일자: 1992년 4월 29일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수 있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1966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거대한 벽이 이 도시를 갈라 놓고 있어서 저는 서부
베를린에서만 연설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재통일된 이 도시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리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한국은 북위 38도선으로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두 개의 한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독일 공화국들이 이미 통일되어 지금은 한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을 저는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당신들과 같은 하나의 통일된 나라를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또한 북쪽에 다시 교회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금년 템플턴상이 이와 같은 북한교회의 재건을 돕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한경직 목사 템플턴상 수상 감사예배

장소: 영락교회 본당
일자: 1992년 6월 14일

제가 이런 상을 받았다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제 마음 가운데에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다 여러분의 은혜이올시다.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 실제로는 다 일을 했어요. 저는 한 게 없습니다.

우리 영락교회는 그저 맨 처음에 이북 공산당에게 쫓겨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시
작이 되었는데 그들이 참 믿음을 가지고 이남에 내려와서 열심히 전도해서 개척교회를
많이 세우고, 특별히 6․25 같은 때도 대구에 가면 대구 영락교회, 부산에 가면 부산 영락교회,
제주도에 가면 제주 영락교회를 세웠고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거든요.

대광중고등학교나 보성여자중고등학교, 숭실대학교, 또 본 교회에서 직접 경영하는 영락중학교나
고등학교, 여자신학원 같은 학교들을 생각할 때, 또 고아원, 양로원 같은 기관들과 지금의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같은 것들을 생각할 때, 다 여기 앉은 여러분들이 수고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이런 모든 것이 더해져서 오늘의 결과를 얻은 것이고, 여러분이 한 일을 제가 대신 받은 것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한경직 목사 템플턴상 수상 축하예배

장소: 63빌딩 코스모스 홀
일자: 1992년 6월 18일

우선 저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앞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꼭 말합니다. 나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신사참배도 한 사람입니다. 죄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것은 또 간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저의 죄를 사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번 템플턴상을 받은 것에 대해 제가 무슨 공이 많은 것처럼 많이 생각하시는데 제가
이번 모임에 갔다 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피난민으로 여기 내려와서
교회도 세우고, 개척교회도 많이 하고, 학교도 많이 세우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봉사기관
을 세웠다는 공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이 상은 제가 받을 상이 아니에요.

이 모든 일은 제가 한 일이 아니고 우리 교회 여러 교우들이 힘써서 한 일입니다. 함께 수고한
이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신 이들도 많이 있지만 여기 앉아계신 이 가운데도 많이 계실 줄로
생각합니다. 사실 독불장군 없다고 혼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상을 받으며 한 가지 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때에 왜 우리 한국교회에 이러한 일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은 우리 남한 교우들로 하여금 다시금 힘을 모아 복음전파에 힘써
서 남한 안에서의 모든 죄악을 몰아내서 깨끗한 나라가 되길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남북통일이 점점 가까워져오고 있는데 한국의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남북통일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깨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열리게 되는 날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재건할 것인가, 어떻게 학교를 세우고 봉사기관을 재건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에 더욱 힘쓰라는 의미도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